인위에서 자연으로 by TheLightOfDay

 인류는 진보를 시작한 이래 느리지만 분명하게 인위적인 것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임의적이고 공상적인 것에서 단순하고 과학적인 것으로 나아갔다. 점차 자신과 자기 일을 자연적인 흐름에 맡기고 그를 따르는 것 - 이게 바로 인류가 진보해 온 길이다. 


 모든 초기 인류와 야만 부족의 세계관은 지극히 임의적이고 인위적이다. 거친 자연에 파묻혀 살면 살수록 습속과 관념은 부자연스러워진다. 자연 상태에 사는 사람은 망상과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 

 우주에 관한 고대의 관념 중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거의 모두 인위적이다. 모세가 말한 창조에서 신은 세계를 말 그대로 만들고 지은 존재이며, 천당과 지옥은 하나는 지상에, 하나는 지하에 있는 어떤 장소에 불과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체계는 천문학이 초기에는 얼마나 인위적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초기 기독교 교부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는 솔로몬의 신전처럼 사각형이었으며, 하늘은 그 가장자리에 붙어 있었다. 

 고대 도시는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생각을 바탕으로 지어지거나 만들어졌다. 도시는 자라나지 않았으며, 마치 집을 짓듯이 의도적으로 설계되고 건축되었다. 예루살렘, 티레, 시돈, 카르타고, 아테네, 로마, 파리, 런던은 현대 도시와 같이 상업이나 사람의 자발적인 이동으로 나타나는 어떤 자연스러운 법칙과 힘의 결과물이 아니었으며, 임의적인 권력이 빚어낸 것이었다. 

 모든 정치적 진보는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강제적이고 인위적인 관계를 철폐하고 자연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이었다. 민주주의는 자연적인 지도자, 그리고 인간임으로써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와 특권을 찾는 일이다. 미국 정치와 사회학에는 아직 임의적인 요소가 많다.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운동은 이러한 조건에 대한 반발이다. 

 고대 세계에 팽배했던 부자연스러운 범죄와 죄악이 오늘날 조금이라도 번성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의학이 인위에서 자연으로, 공상에서 과학으로 진보한 바는 얼마나 대단한가! 마치 오늘날 미국 원주민의 의술처럼, 고대의 치료법은 거의 다 환상적인 것들이었다. 인디언은 기억력 증진을 위해 옷에 달라붙는 종류(역주: Hackelia virginiana, 북미 원산의 식물)의 씨앗으로 차를 끓여 마신다; 그게 기억이 머리에 달라붙게 해준다나. 

 한때 의학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상징설"도 비합리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대인의 귀(역주: Auricularia auricula-judae, 19세기까지 유럽에서 약용으로 쓰였던 버섯)는 모양이 귀와 닮았다는 이유로 귓병 약재로 쓰였다. 간엽(肝葉)(역주: 원문은 liver leaf, Hepatica 속의 식물)도 내가 짐작하기로는 비슷한 이유로 간을 치료하는데 쓰이곤 했다. 말린 구렁이 가죽은 중요한 약재였으며, 미라를 빻은 가루도 마찬가지였다. 터무니없기로는 만만찮은 치료법이 족히 백 개는 더 될 것이다. 

 질병에 관한 첫, 또는 가장 오래된 관념은 질병은 악령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퇴마 의식이나 어떤 종교적 의식이나 의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최초의 의사는 사제였다. 질병의 악령설은 오래 전에 폐기되었으나, 여전히 일부 신학자는 광기에 대한 악령설, 혹은 악마의 빙의와 같은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얼마 전에 뉴 잉글랜드 대학의 학장은 이와 같은 신조에 대한 믿음을 표한 바 있다.  

 이번 세기의 앞 절반이 끝나가도록 우리의 의학 체계는 우리의 신학만큼이나 인위적이였다. 의사는 사제만큼이나 자연적인 것을 혐오했다. 사제는 인간은 자신에게 내재한 어떤 미덕이나 탁월함도 아닌, 은총을 통해 구원받는다고 가르쳤으며, 의사는 병은 인체의 내생적인 회복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에 의해서 낫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약이나 처방은 오늘날 경시되고 있다. 의사는 더 이상 증상 조절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원인을 제거하고자 한다. 의사는 신선한 공기, 물, 운동, 올바른 습관, 제대로 된 음식 등 자연에 주로 의존한다. 열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려 하고, 환자의 기력을 북돋아주려고 노력한다. 

 종교에서도 의학과 정확히 같은 양상의 진보가 일어났다 - 임의적이고 환상적인 것에서 단순하고 자연적인 것으로; 우주를 초자연적인 존재의 놀잇감이자 도구로 보던 관점에서 일련의 인과관계에 가차없이 속박된 세계로 보는 우주관으로, 또는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서 코페르니쿠스식 체계로. 고대 종교가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었던 점은 굳이 증명할 필요조차 없다. 기독교 신화가 마찬가지로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란 점은 그리 쉽게 널리 인정을 받지 못한다. 예수 본인의 가르침은 극히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나, 예수에 관해 생겨난 각종 관념으로부터 자라난 종교 조직은 정반대로 극히 복잡하고 인위적인 것이었다. 천 칠백년 동안이나 인류는 그런 악몽에 갇혀 있었다. 자연적인 사실은 거의 모두 왜곡되었으며, 가슴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본능은 거의 모두 마비되었다. 가톨릭교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악몽에 아직도 갇혀 있다; 개신교에서는 이런 저주가 부분적으로나마 풀렸다. 개신교는 이성과 어느 정도 타협을 이룬 결과물이나, 가톨릭교는 이성을 발 아래 둔다. 가톨릭교도는 어떤 한도 내에서는 아주 치밀한 논리를 펼치지만, 밧줄에 매인 것 마냥 일정 지점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가톨릭교도의 이성은 신앙의 종이며 암묵적으로 신앙에 복종한다. 이는 마치 입에 마개를 씌운 흰담비와도 같아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 사냥한다; 사냥감은 신앙의 몫이다. 

 마술을 부리는 사제와 엉터리 처방을 쓰는 의사는 이제 때가 다했다. 자연적인 선(善)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그는 이제 가망이 없으며, 만약 내재된 회복력이 치유해주지 못한다면 그는 죽는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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